2026 전시공간지원프로젝트 공유
이 정 <낮은 음의 행진>
전시장소 :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갤러리스페이스Ⅱ(3F)
전시기간 : 2026. 11. 3.(화) ~ 11. 15.(일) *월요일 휴관
전시소개 글
주기적인 이동과 한시적인 머무름의 반복은 모호한 경계로 존재하는 공간 및 사물의 독특한 ‘정황’에 주목하게 한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오해와 실수, 착각과 착시를 동반하기도 한다. 이는 유영하는 주체가 장소 아닌 장소를 등지거나 대등한 시선으로 지나치기만 하듯, 언제나 비껴가기만 했던 주변부와 소실점 없는 평행선 위의 그 관계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낯선 이방인'의 위치에서 이를 해독하고 재맥락화한다. 이동 중인 '나'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나들면서 익숙했던 대상과 풍경으로부터 어느 순간 동떨어진 시선을 확보하게 된다. 끊임없이 공간과 분리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타자성이 발현되고 짙어지는 것은 아닐까. 무심한 듯 비껴가는 주변부는 내게 가깝고도 먼, 끊어지고 이어지는 비동시성의 공간이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감이 혼재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포탈을 통과한 후, 즉 풍경의 극단적 변화를 겪은 후에 찾아오는 일시적인 피로감은, 분절된 감정의 배경 내지 그 기저에 깔린 ‘헤매임' 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이동하는 주체와 멀어지는 풍경의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어긋남. 그 여백으로 남은 분절된 감각을 나는 '소실점 없는 공간'으로 다시 소환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자 주제인 ⟪낮은 음의 행진⟫이 가진 텍스트적 운율과 함께, 최근 몇 년 동안 움직이는 시공간 속에서 포착해 온 이미지와 도상들을 전시공간에 재배치하고 재구성한다. 이는 이미지(기호)가 가진 직관적 인식의 메커니즘을 감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소실점 없는 공간'은 알천미술관 갤러리스페이스Ⅱ의 건축적 구조가 형성하는 물리적인 테두리이자 행위와 시선, 감각의 변주에 개입하는 장소이다. 갤러리스페이스Ⅱ는 출구와 입구가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되는 도넛 형태의 '통로'로, 관객에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역동적인 통과와 순환의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다시 전시 구조 안에서 그저 멀어지고 비껴가기만 했던 주변부와의 관계가 ‘되돌아 오는 구조와 시선의 관계’로 재편되며, 거기서 오는 시각적 충돌과 심리적 거리의 지형을 다시 그려보게 한다.
‘낮은 음의 행진’은 마르크 오제가 그의 저서 『비장소』에서 언급한 장 스타로뱅스키의 표현을 빌려온 것이다. 스타로뱅스키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인 우울과 상실감을 내면의 기저에 흐르는 '지속저음(Basso continuo)'에 빗대어 설명했다면, 오제는 오직 이동과 소비라는 현재의 기능에만 충실한 비장소(고속도로, 공항, 대형마트, 휴게소 등)의 익명적 공간에서 문득 엄습해 오는 과거와 기억의 귀환을 묘사하는 데 이 개념을 가져온다. 스타로뱅스키에게 이 낮은 음이 상실의 고독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흐르는 기억의 침전물이자 정신적 다성성 이었다면, 오제는 초근대사회에 무수히 늘어나는 비장소의 배경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옛 장소와 시간의 흔적을 이 베이스 음에 비유한다. 이를 통해 오제는 거대한 익명성의 공간 속에서도 시간의 연속성과 정체성이 완전히 말소되지 않고 지탱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번 전시의 ⟪낮은 음의 행진⟫은 스타로뱅스키와 오제의 상호 텍스트적 관계를 경유하면서, 흩어지는 주변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관계적 태도를 전시의 논리로 풀어내기 위한 일종의 메타포가 된다. 쉽게 지나치는 주변부와 소외된 풍경의 요소들, 찰나의 미시적이고 심리적인 감각을 아우르는 '낮은 음' 은 원형의 공간을 천천히 걸으며 사유하는 관객의 리듬과 맞물린다.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관객의 신체적인 움직임과 내면의 운율은 통로의 물리적인 동선의 흐름을 따라 차창 밖 비껴가는 풍경의 행렬을 감각으로 연결한다.
이처럼 공간의 구조와 작품이 맺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원형통로’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의 '걷기'는 재편된 풍경을 매개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이는 전시공간을 단순한 관람의 장소에서 사유의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선 속에서 관객의 의식적 개입이 이루어질 때, 비껴가는 잔상의 풍경들이 비로소 저마다의 사유로 완성되리라 믿는다.


